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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사람들 20 삼수령- 위협받는 강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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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강 댓글 0건 조회 192,378회 작성일 18-08-28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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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빛 여명 속에서 새가 알을 낳듯 빨간 해가 하늘로 솟는다. 빛이 열리면서 사방은 온통 산뿐이다. 덕항산에서 바다를 등지고 서남쪽으로 몸을 튼 백두대간 마루금에서 바라보이는 사방은 온통 산뿐이었다. 산 어딘가에서 뻐꾸기가 울더니 “삑 죠르르름 삑 죠르르름…” 처음 들어보는 또다른 새소리가 뻐꾸기의 노래를 이어받는다. 노란 햇살이 간밤 바람에 시달렸던 나뭇가지를 위로하기 시작하자 초록은 황홀한 유혹을 시작한다. 강원도가 비로소 강원도일 수 있는 ‘강이 열리는 곳’ 삼수령의 아침은 그렇게 열린다.

하늘에서 내려온 빗방울이 한강과 낙동강, 오십천으로 갈라져 서해와 남해 그리고 동해로 흘러든다는 삼수령(三水嶺)이지만 인근에서는 ‘피재’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다. 옛날 세상이 어수선해지기라도 하면 사람들이 피난 들어오던 곳이라는 내력이 담겨 있는 이름이다.

눈길이 닿는 곳 어디에도 쌀 한 톨 생산할 평지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산골 중의 산골,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사람이 살 만한 땅이 못 된다”고 단언할 정도로 바람도 거센 땅 어디에 이상향이 있다는 것일까? 옛 사람들이 찾던 이상향은 아마도 마음속에 있었을 것이다.

이러저러한 연유로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던 옛 사람들에게 강줄기는 주요한 이동통로였다. 낙동강과 한강이 시작하는 삼수령 인근은 그런 옛 사람들에게는 종착지였을 것이다. 1300여리 먼 물길을 거슬러 백두대간 품에 안기기까지 그들은 몇 번이나 삶의 터전을 옮겼으리라. 그러면서 토착민들을 이주민들이 내몰고, 내몰린 토착민들은 더 상류로 올라오면서 또다른 토착민들을 내몰고…. 그렇게 밀리고 밀린 이들이 삼수령 인근에 터전을 닦았을 것이다. 지금도 전해지는 이무기의 전설은 그런 과정을 설명한다.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에 이무기 한 마리가 살았다고 한다. 서해에서 용이 되기 위해 강을 거슬러 올라온 용은 마을의 소를 잡아먹으며 승천의 때를 기다렸다. 사라지는 소를 찾던 사람들은 검룡소 바로 앞 바위에 새겨진 용틀임 흔적으로 이무기가 올라왔음을 알고 고래잡는 작살로 이무기를 죽인다. 그리곤 검룡소를 아예 메워버렸다는 것이 검룡소에 전해지는 전설이다.

전설로만 전해지던 검룡소가 다시 세상에 나타난 것은 지난 86년 태백시문화원 준설 복구 때였다. 하루 2천여t의 물이 해발 900여m 산중에서 솟는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그런 샘이 오랜 세월 흙 속에 묻혀 있었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어쩌면 전설에서 나오는 서해에서 올라온 이무기는 한강 유역을 지배하던 백제가 고구려에 패할 때 미처 웅진으로 피하지 못하고 강을 거슬러 올라온 세력을 지칭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산골 중의 산골에서 만들어진 전설에 고래잡이 작살이 등장하는 것은 당시 해안을 끼고 있는 삼척지방을 지배하던 실직곡국의 세력이 삼수령 근방까지 지배했던 증거일 수도 있다고 학자들은 추정한다.

피재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가야 하는 금대봉 기슭의 검룡소 가는 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은 신기한 것들뿐이다. 길가에 활짝 핀 꽃들에 조금만 신경쓰면 제각각 생김새가 다른 벌들을 만날 수 있다. 몸은 허공에 띄운 채 가늘고 긴 빨대를 꽃잎 속에 들이밀고 꿀을 따는 놈, 다른 벌들은 다가오지 못하게 막느라고 정작 꿀은 따지도 못하는 욕심 많은 놈, 몸집이 작은 놈은 아예 온몸에 노랗게 꽃가루를 뒤집어쓰고 있다. 꿀을 따는 것이 벌과 나비뿐이 아닌 것도 배울 수 있다. 무당벌레는 물론이고 심지어 개미까지도 꽃잎을 뒤적인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움이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무기가 용틀임한 흔적이라는 검룡소 바로 아래 폭포에 비단을 깔아놓은 것 같던 이끼는 이미 절반 가량 사라져버렸다. 소 안에는 오가던 이들이 복을 빌며 던져놓은 동전이 늘고만 있다. 들머리에 차량 출입을 막는 차단기를 설치한 뒤로 사람들의 발길이 줄었다지만 훼손은 계속된다고 한다.

무엇보다 문제는 ‘탄광도시에서 관광도시로’ 탈바꿈하겠다는 태백시의 개발 계획이다. 창죽동 일대에 들어설 스키장과 콘도, 호텔 등을 골자로 한 태백관광레저단지 건설 채비가 끝났다고 한다. 검룡소를 중심으로 금대봉과 대덕산 일대를 희귀 양서 파충류를 보호하기 위해 천연보호구역으로 묶어놓았다지만 끊임없이 드나드는 나물채취꾼들을 막지는 못한다. 경기가 회복돼 자금 여력만 생긴다면 언제든 개발은 이루어질 것이다.

태백시는 이미 검룡소 맞은편 백두대간 주능선이 지나는 창죽동 중물골에 공설묘지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높았던 반대 목소리는 태백을 살리겠다는 개발논리에 묻혀버린 것 같다. 공설묘지가 들어서는 곳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세 강을 가르는 분수령인 삼수령과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다. 게다가 태백시 개발계획에 따르면 삼수령에 들어서게 될 오토 캠프장은 공설묘지 옆에 자리잡게 된다. 검룡소에 들어설 태백관광레저단지 호텔에서 묘지가 빤히 들여다보일 형편이다.

태백시의 개발계획은 도계읍 구사리 백산골 깊은 곳의 오십천 발원지도 위협하고 있다. 백병산 스키장은 오십천 발원지 뒷 사면에 들어선다. 개발이 시작되면 100여평 남짓한 늪으로 이뤄진 발원지가 망가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비록 크지는 않지만 동이나물, 곰취, 박새, 투구꽃 등 온갖 식물들의 작은 천국인 오십천 발원지는 심영진(48)씨가 수년간에 걸친 현장답사 끝에 찾아낸 곳이다. 평생을 사진과 더불어 사는 심씨는 삼척을 사진에 담는 일에 평생을 건 사람이다. 산에 오를 때면 물도 준비하지 않는다는 심씨는 산에 오르면 적어도 배 곯을 일은 없다는 것을 안다. “밥 한 덩이와 된장 한 움큼이면 충분합니다. 온 산에 먹을 것이 천지에요.” 갈증을 달래려 참당귀 줄기를 꺾는 그이지만 발에 밟힌 꽃대를 세우기 위해 오랜 시간 맨땅에 무릎 꿇을 줄 아는 사람이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닌 한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심씨의 원칙은 경험에서 배운 자연과의 공존 방법이다.

낙동강 발원지 황지가 관광객들에게 외면받는 이유는 지나치게 사람 손을 탄 탓이다. 급작스런 도시화로 황지는 바로 앞에 가기 전까지도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공원화한다고 수심을 낮추는 통에 물 속 절벽과 물이 솟는 동굴, 황부잣집 기둥으로 불리던 물 속 나무들도 모두 묻혀버렸다. 이제 황지는 비단잉어가 노니는 잘 꾸민 연못일 뿐이다. 태백시 상수원으로 이용될 만큼 풍부한 지하수를 내던 모습은 이제 찾을 수 없다.

카지노를 끌어들이려 애쓰고 심지어 핵폐기물 처리장까지 제공하겠다고 나설 정도로 태백시의 사정은 다급하다. 그렇다고 무작정 남의 것을 베끼다가는 그나마 갖고 있는 귀한 관광자원마저 없애버리는 일이 될 것이다. 푸른 비단을 닮았던 검룡소 폭포의 이끼가 되살아나는 날 이무기는 태백시를 살리는 용으로 승화하지 않을까?

출처: http://100mt.tistory.com/entry/백두대간사람들-19-매봉산-위협받는-강의-고향 [<한겨레21> 신 백두대간 기행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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